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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후삼국시대, 고려의 탄생과 멸망과정, 고려왕들의 업적

by glory20 2024.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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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후삼국시대와 고려의 탄생, 멸망과정, 고려왕들의 업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후삼국시대의 전개

(1) 후백제와 후고구려의 건국

신라의 쇠퇴 이후,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각각 892년과 901년에 건국되었다. 후백제는 견훤에 의해 전주를 중심으로, 후고구려는 궁예에 의해 송악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두 나라는 각각 신라와 경쟁하며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다.

 

(2) 신라의 멸망

후백제와 후고구려의 등장으로 신라는 급격히 쇠퇴하였다. 935년,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함으로써 신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2.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

918년 왕건에 의해 고려가 건국되었다. 왕건은 후고구려의 왕이었던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웠다. 이후 왕건은 936년 후백제의 마지막 왕 신검을 무찌르고 후삼국 시대를 종식시켰다. 이로써 고려는 한반도를 통일하였다. 다음은 고려의 정치,사회,문화 등을 정리한 내용이다. 

 

(1) 고려의 정치와 사회

고려는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였다. 왕권을 강화하고, 2성 6부 체제를 통해 국가의 행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였다. 또한, 지방에는 5도 양계의 행정구역을 두어 통치를 강화하였다.

 

(2) 귀족 중심의 사회구조

고려는 귀족 중심의 사회구조를 유지하였다. 문벌귀족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가를 이끌어갔다. 과거제를 통해 문신과 무신을 선발하였으며, 이를 통해 관료 체계를 확립하였다.

 

(3) 불교의 융성

고려는 불교를 국가의 주요 종교로 삼았다. 태조 왕건은 불교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귀족과 백성의 지지를 얻었다. 불교는 고려 문화와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사찰과 불상이 건립되었다.

 

(4) 고려의 문화

고려청자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송나라로부터 도자기 제조 기술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청자 문화를 발전시켰다. 고려청자는 그 세련된 디자인과 아름다운 색상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고려는 불교 문화를 통해 많은 예술 작품을 남겼다. 불상, 탑, 사찰 등 다양한 불교 예술품이 만들어졌다. 특히,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은 고려시대 불교 문화의 정수로 꼽힌다. 또한 고려는 문학과 학문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는 한국 고대사의 중요한 기록물이다. 또한, 성리학이 전래되면서 학문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고려는 500여 년 동안 한반도를 통치하며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유산을 남겼다. 고려의 중앙집권적 체제, 불교 문화, 그리고 다양한 예술품은 한국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5) 고려 왕들의 업적

-태조왕건 

태조 왕건은 고려의 건국자로서,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는 민생 안정과 국토 재건에 힘썼으며, 호족을 포섭하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광종

광종은 고려의 제4대 왕으로, 왕권 강화를 위해 과거제를 도입하고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였다. 그는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확립하였다.

 

-성종

성종은 고려의 제6대 왕으로, 국자감을 설치하고 유교를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 그는 지방 제도를 정비하고 문신을 육성하는 등 고려의 중앙집권적 체제를 완성하였다.

 

-현종

현종은 고려의 제8대 왕으로, 거란의 침입을 막아내고 국방을 강화하였다. 그는 또한 불교를 장려하고 많은 사찰을 건립하였다.

 

-문종

문종은 고려의 제11대 왕으로, 재정과 행정을 정비하여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그는 학문을 장려하고 귀족 문화를 꽃피웠다.

 

-공민왕

공민왕은 고려의 후반기를 대표하는 왕으로, 원나라의 간섭을 물리치고 자주적인 고려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개혁을 추진하고 국방을 강화하였으며, 불교의 폐해를 시정하였다.

 

3.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

(1) 고려의 쇠퇴

고려는 14세기 후반부터 정치적 혼란과 외세의 간섭으로 쇠퇴하였다. 원나라의 간섭과 홍건적, 왜구의 침입으로 국력이 약화되었다. 또한, 무신정변과 권문세족의 횡포로 인해 내부적으로도 불안정하였다.

 

4. 조선의 건국 

고려 말기, 명나라는 새로운 대외정책으로 인해 고려에 자주 간섭을 했다. 명나라는 1388년 요동 지역을 공격할 것을 고려에 요구했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와의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명나라의 요구는 고려 내부의 정치적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고려의 실권자 최영은 요동 정벌을 통해 국외로 눈을 돌리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내부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반면, 이성계는 요동 정벌이 국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반대했다. 하지만 최영의 주도로 정벌군이 편성되었고, 이성계는 부득이하게 출정하게 되었다. 1388년 5월, 이성계는 요동 정벌을 위해 압록강을 건너 위화도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성계는 이곳에서 큰 결단을 내리게 된다. 요동 정벌이 성공할 가능성이 낮고, 나라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회군을 결심하게 된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사들을 모아 회군을 결정했다. 그는 요동으로 진군하지 않고, 오히려 군사를 돌려 개경으로 향했다. 이 사건을 '위화도 회군'이라고 한다. 이성계가 회군하여 개경으로 돌아오자, 그는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최영은 체포되어 처형되었고, 이성계는 고려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위화도 회군 이후, 고려의 정치적 판도는 급격히 변화했다. 이성계는 고려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으며, 이후 1392년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게 된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은 1392년 이성계에 의해 폐위되었고,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였다. 조선의 건국은 고려의 쇠퇴와 내부적 혼란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왕조의 출발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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